
내 어릴 적 보리는 무척 질리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가정실습을 하고 학교를 쉬면서 보리타작에 참여해야 했다.
보릿대를 나르고 쌓고 ... 자잔한 일을 도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온몸에 보리의 수염이 부셔진 까시래기가 온몸에 붙어 따끔거렸다.
수확이 끝난 논에서 이삭줍기도 했다.
지금 보라밥은 별미로 건강식으로 찾아먹기도 하지만 그시절은 쌀이 거이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으로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겉돌았다.
봄이면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때우기 어려워 채 여물지 않은 보리를 수확해 끼니를 이었었다.
그것이 보릿고개다.
5-6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우리들에게 보리는 그런 대상이었다.
요즘 농촌은 보리밭을 찾기 어렵다.
식량으로서의 역할 미약하고 수지가 맞지않는다고 재배하지 않는 것이다.
청보리밭은 관광상품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밀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