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배박사 - 헌신적인 안내와 열정적인 설명이 오래 뇌리에 남을 것 같다.
경주에 여러번 들렀지만 남산 속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들어 가장 무더운 날 경주를 다시 찾았다.
중학교동창 다섯이 늦은 수학여행을 나선 셈이다.
남산이 좋아 경주에 늘러앉았다는 김문배박사님의 안내를 받아 경주의 석불 몇곳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둘러본 석불들을 게재할 예정이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은 석굴암의 부처님을 연상케하는 온화한 미소가 참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준다.
남산의 다른 석불들 보다 정교하고 크기도 가장 큰것 같다.
남산을 상징하는 부처님
경주 임업시험장에서 이어지는 남산자락은 동남산이라 불리며 많은 부처님을 모시는 장소다. 탑골과 미륵골이라 불리며 수많은 불상과 석탑을 간직하고 있으며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사찰 보리사가 자리한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련도장인 보리사는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 삼국사기에 이곳을 기준으로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의 위치를 알리는 것으로 보아 사찰의 역사와 규모가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당시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으로 사라지고 새롭게 단장된 사찰은 대웅전과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출한 모습이지만 잔디 위에 자리하는 석불좌상을 만나면 신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방금 조각된 듯 단정한 연화대좌 위로 자리 잡은 석불은 광배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걸작이다. 두툼한 입술을 중심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은 마치 석굴암 본존불을 축소시킨 듯하지만 엄숙미로 가득한 석굴암의 부처님보다 정답고 부드러운 모습이라 사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만든다. 몸통 부위의 당당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자락이 금방이라도 바람에 흔들릴 것 같다. 특이한 것은 광배의 뒷면에 새겨진 약사여래로 본래 다른 전각에 모셔야 할 부처님이 한 몸으로 만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리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6, 한국관광공사)